알에게 기운을 건넨 지 일주일째 되는 늦은 밤. 그날은 만월 빛이 유난히 밝아 몬스터 퇴치를 마치고 돌아오는 디트가 라이트 마법을 쓰지 않아도 어두운 숲길을 지나올 정도로 밝았다. 디트가 현관문을 붙잡으려는 순간 시온이 벌컥 문을 열더니 디트의 손을 붙잡고 다짜고짜 3층 마리의 방으로 향해 달려갔다. 마리의 방문을 여는 순간 타이밍 좋게 알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달빛을 받은 알은 조각조각 깨져 떨어지더니 공기 중으로 반짝이며 사라져갔다.

 

알에서 태어난 은발의 아이는 5살 정도의 외형을 가졌고 옅은 보라색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신비로운 색을 자아내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리가 준비한 타월로 소녀를 감싸주며 보기 드문 실버드래곤이네?’라고 디트가 처음 입을 열었고 신비한 탄생의 순간을 목격한 시온과 마리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중 곧 정신을 차린 시온이 밖을 향해 따뜻한 물과 옷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자 인기척이 없던 복도가 이윽고 시끄러워 지더니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고양이를 닮은 외형의 요정 캣트시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온 넌 내가 태어났을 때도 봤으면서 뭐가 그렇게 신기다하는 표정이야?”

그땐 날개돋이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파서 누워있었어. 널 본 건 네가 태어나고 일주일 후였잖아.”

, 그랬나? 남자가 그렇게 몸이 약해서야 괜찮겠어? 하긴 하루 종일 지하실 구석에서 먼지만 마시고 있는데 몸이 나빠지지 않으면 이상한거지.”

마리 너 요즘 많이 기어오른다? 힘 좀 쓸 수 있다고 이제 위, 아래도 없나보지? 내가 너 보다 15년은 더 살았거든?”

? 나이만 많은 주제에 강한 줄 아나본데? 한 번 겨뤄볼래?!”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싶으면 두 사람 모두 나와 대련 한 판할까?”

 

말싸움에서 몸싸움으로 번져가는 두 사람을 진정시킨 디트는 두려운 듯 타월 안으로 작은 몸을 계속 숨기려는 소녀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며 조심히 질문을 하였다.

 

"전생의 기억...가지고 있어?"

 

디트의 질문에 타월에 몸을 숨기던 소녀가 고개를 조심히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럼. 진짜 이름은 생각나?"

 

두 번째 질문에 움찔 어깨를 떨던 소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이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찼고 울지 않으려는 듯이 굳게 다문 입이 새파래질 정도로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움직였다.

 

괜찮아. 이름이 없다는 건 세계에서 네가 사라졌다 걸 의미하니까 두려운 거지? 우리들도 같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마리가 조심히 다가와 소녀의 몸을 감싸 안은 뒤 등을 토닥여 주었고 디트와 시온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진정된 아이를 고양이 요정 캣트시들이 들고 온 따뜻한 물로 몸을 깨끗이 씻긴 뒤 편안한 하얀 원피스를 입혀 2층의 다과실로 이동하였다. 다과실에는 언제 준비하였는지 차와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고 우선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배가고플 소녀에게 식사를 권하는 셋이었다. 처음 낯설어하던 소녀도 이제는 조금 안심이 되고 익숙해졌는지 맛있게 식사를 마쳤고 식사를 마칠 동안 셋은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차를 마시며 소녀의 이름에 대해 열띤 토론을 시작하였다.

 

"그럼 아카시아로 결정하는 거다!"

 

마리의 외침에 후식으로 나온 따뜻한 우유를 마시던 소녀가 놀랐는지 움찔하였고 미안함에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마리였다. 마리의 당황한 모습에 미소 짓는 소녀를 보며 디트가 작게 재채기를 하였다. 집중을 바라는 신호였다.

 

"너도 알다시피 우린 드래곤으로 환생한 환생자야. 전생에 영웅이라 불린 자들로 이건 영웅으로써 죽은 우리에게 신이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할 수 있어. 전생 때 전설이든 소문으로든 한 번은 들어봤을 거야. ‘영웅들은 죽어서 신이 된다.’라는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본 기억 없어? 우리가 드래곤으로 태어난 건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거야. 드래곤은 어떤 차원, 세계이든 간에 강하고 신성시되며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신에 가장 가까운 생물이라고 할 수 있지. ,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차원 텔루스에 존재하는 드래곤은 모두 백 명으로 아마 네가 마지막일거야. 연락받은 바로는 모든 드래곤이 태어나 가족을 이루었고 4명이 모이지 않은 건 우리뿐 이였으니까. 창세시절부터 있었던 에이션트 드래곤에게 들었는데 환생자는 언제나 백 명으로 4명이 동료이자 가족으로써 살아가게 되어있어. 가족이 되는 자들은 피가 이어져있지 않아도 서로의 타고난 마나가 닮아있다고 할까? 마나 즉 영혼으로써 이어져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이 세계가 시작하고 우리 세대가 3번째라는 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야. 알 속에 있을 때 이런저런 정보들이 들어와서 혼란스럽겠지만 우선 태어난 걸 축하해. 이건 우리가 너에게 주는 첫 선물이야. 해피버스데이 아카시아. 네게서 흘러나오는 꽃향기를 따서 지은거야. 마음에 들어?"

 

소녀의 큰 두 눈동자에서 눈물방울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소녀의 눈동자에서 볼을 타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쁨을 감추지 않은 눈물이 흐르는 얼굴로 밝게 미소 짓는 소녀를 조용히 안아주며 디트와 시온, 마리는 소녀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다. ‘아카시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은 소녀는 전생에서 끝맺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차지한 제목은 아마 가족일 것이다.

 

 

 

 

------ 아카시아 의상